◆ 2022 신년기획 이젠 선진국이다 / 기업이 예술 꽃피운다 ① ◆
1社 1메세나 시대, 문화강국 뒤에 든든한 기업 지원 ▲ 조각가들을 후원하는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 롯데뮤지엄 전시를 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회사 로비를 미술관으로 꾸민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현대차정몽구재단이 후원하는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백건우(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의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나오려면 젊은 현대미술 작가를 지원해야 한다." 소문난 예술 애호가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8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현대미술관인 '롯데뮤지엄'을 개관한 후 이듬해부터 국내 신진 작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 디자인의 원천이 미술이기 때
문이다. 실제로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당대 최고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 루이비통 역시 솔 르윗, 제프 쿤스, 구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등 유명 현대미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제품 디자인에 반영하며 '완판' 기록을 세웠다. 롯데문화재단은 연간 약 200억원 규모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후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 분야와 작가를 찾아 집중 후원하는 게 눈에 띈다. 지난해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전시 '김정기, 디아더사이드'가 신 회장의 후원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다. 독보적인 라이브 드로잉 작가 김정기는 국제 무대에서 이
름을 알렸지만 국내 전시를 한 차례도 열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전시회에선 그의 새로운 신작을 포함해 드로잉, 회화, 영상 등 2000여 점을 전시해 호평을 받았다. 전시 이후 롯데그룹은 김 작가의 창작활동을 도왔다.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은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원단에 김 작가의 작품을 인쇄해 친환경 파우치 2종과 카드지갑 1종을 선보였다. 예술과 산업의 친환경 협력 사례로 주목받았다. 또 엔제리너스는 김 작가의 작품을 담아낸 머그와 텀블러 등을 선보였다. 김 작가는 이후 지난해 11 월 개관한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기념관'에 롯데의 역사 일러스트 작업도 함께하며 파트너십을 이어갔다. 방탄소년단(BTS),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한류 열풍에 국내 기업들 제품이 덩달아 잘 팔리고 있지만, 한국 문화 성장 배경에는 이처럼 든든한 기업의 지원이 있다.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은 예술가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신문화재단이 소유한 서울 한남동 일신홀은 2009년 개관 이래 현대음악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김 회장은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 씨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2007년 독일 몽블랑문화재단에서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받았는데 이때 받은 후원금(1만5000유로)을 진씨에게 전달했다. 현대음악에 대한 김 회장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신홀은 연습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음악가들
에게 무상으로 제공된다. 재프랑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내한 때마다 연습실로 사용하는 곳이 일신홀이다. 김 회장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하지 못하는 백씨가 한국에 올 때마다 연습 장소를 찾느라 고생한다는 얘기를 듣고 1990년대 중반부터 이곳을 연습 장소로 제공해왔다. 일반적인 공연장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
관에 주력하지만 일신홀은 이처럼 수익 일정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음악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이 자택 내 공간을 설치미술가 이불 작가에게 작업실로 제공한 것은 문화계 몇몇 인사들만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은 15년째 조각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2007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크라운해태 송추 아트밸리 인근 모텔 10여 개를 인수한 뒤 이를 작업실로 개조해 조각가들에게 제공했다. 세계 최대 미술품 거래 장터인 스위스 아트바젤 기간에는 현지로 날아가 집을 빌려 조각가들을 말 그대로 먹이고 재웠다. 현
지 네트워크(인맥)를 총동원해 갤러리 대표들과 만남도 주선할 정도로 열정을 불살랐다. 그는 입버릇처럼 "조각계에서도 한류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은 2010년 두산연강예술상을 제정한 이래 2030세대 젊은 예술가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또 공연예술 분야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두산아트센터(DAC) 아티스트'를 통해 작품별로 1억원 규모의 제작비를 지원하고, 무대기술 장비와 연습실 등도 제공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2007년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현대차정몽구재단은 2009년 문화예술 후원 사업을 시작한 이래 총 424억원을 투입했다. 재단은 '온드림 문화예술 인재' 장학사업을 통해 클래식음악·무용·국악 분야에서 재능을 갖춘 중·고교생과 대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이한나 기자 / 오수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22.01.13 보도 |